차두리 국가대표 은퇴 - 차두리고마워 왜 떴을까?, 차두리 드리블을 막기 힘든 이유, 차두리 커리어 어떨까?
안녕하세요? 오늘 전해드릴 소식은 차두리의 국가대표 은퇴소식입니다.
차두리선수가 2015년 1월의 마지막날 호주를 상대로한 아시안컵 결승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차두리의 은퇴와 함께 2002년 월드컵 4강 세대의 종말을 알렸는데요. 이에 네티즌들은 차두리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실시간 검색어로 차두리고마워를 검색하며 차두리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차두리는 누구?
차두리는 축구선수이자 감독 차범근의 아들로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시절 2002년 월드컵대표로 선발되었으며 교체멤버로 활약하여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공헌하였습니다. 특히 16강에서 연장전 부폰을 상대로 오버헤드킥을 날렸지만 아쉽게도 정면으로 가서 골 사냥에 실패하였습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독일의 명문구단이자 현 손흥민 소속구단인 바이어 레버쿠젠에 입단하였는데요, 입단과 동시에 빌레펠트로 임대를 갔다가 프랑크푸르트에서 2006년까지 뜁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그의 국가대표생활은 힘들었는데요. 설기현, 박지성, 이천수 등 국가대표에서 활용할만한 윙포워드가 많았고, 2006년에는 정경호까지 합세하면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였지만 송종국에 밀려 2006년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해버립니다. 그리고 월드컵 중계를 맡게되는데요. 이후 마인츠,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등을 거치며 포지션을 우측 윙백으로 완전히 변경하였고 대한민국의 취약점이던 우측윙백 자리를 훌륭히 소화하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활약을 합니다. 특히 아르헨티나전에 오범석이 대신 나와서 삽질을 해주면서 차두리는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게됩니다. 이후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의 셀틱에 입단하였습니다. 셀틱에서는 주로 로테이션 멤버로 뛰었는데요. 셀틱에서 스코틀랜드 리그우승을 하였고, 기성용의 적응을 도왔습니다. 셀틱과의 계약이 만료된 2012년, 그는 독일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돌아오는데요. 이때 우측 윙포워드로 다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아내와의 이혼을 겪게되면서 특별휴가를 받다가 상호계약해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2013년 FC서울에 입단합니다. FC서울에서 활약은 좋았으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하였으며 다시 해설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등장과 함께 국가대표팀 은퇴무대인 아시안컵에 나선 차두리는 대활약을 펼치며 팀이 준우승을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요. 특히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의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드리블 후 손흥민에게 연결한 어시스트는 이번 대회에서 차두리의 활약을 표현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차두리가 아쉽게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는데요.
하지만 차두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소속팀 K리그의 FC서울에서인데요, 서울과의 계약이 아직 1년 남아있기때문에 2015시즌까지는 현역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차두리를 더 보고싶으신 분들은 FC서울의 경기를 관람하시면 되겠습니다.
차두리의 드리블은 왜 막기 힘들까요?
차두리의 드리블이 막기 힘든 이유는 드리블의 세밀함보다는 그의 파워풀한 신체적 능력을 커버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왼쪽 풀백이던 비탈리 데니소프는 러시아 명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 뛰는 선수인데요. 이정도의 선수를 단순히 기술없이 피지컬로 벗겨내버리는 모습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드리블을 치는것이아닌 공을 차놓고 쫓아간다고 표현하면 되겠습니다.
차두리, 포지션 변경에 얽힌 일화
차두리의 본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습니다. 하지만 골 결정력에 문제를 보이며 윙포워드로 자리를 옮겼고 거스히딩크, 위르겐 클롭 등 감독들의 권유로 우측 풀백으로 포지션변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스히딩크는 2002년 일찌감찌 우측풀백으로 보직변경을 제안했는데요. 차두리가 이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좀 더 완성된 우측 풀백이 되지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